2025년 6월 6일, 현충일이 지나고 맞이한 연휴.
연두빛이 짙어가는 초여름, 나는 무주의 작은 마을 안성면 두문리로 향했다.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은 마치 긴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온 듯, 태극기만 안 들었을 뿐이지 마치 해방을 맞이 한 것처럼, 거리로 산으로, 축제 마당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고속도로는 하루 종일 몸살을 앓았다. 그리고 나는 그곳, 무주 안성 낙화놀이 축제에 도착했다.
🌟 낙화놀이란?
한지에 쑥과 뽕나무 숯, 소금을 넣어 만든 작은 봉(낙화봉)을 100개에서 200개쯤 긴 줄에 주렁주렁 매달아 불을 붙이면,
그 불꽃이 줄을 타고 주르륵 흐르며 마치 불꽃이 꽃잎처럼 흩날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전통 불꽃놀이를 말한다.
🔥 불꽃이 아니라, 눈물이다
어둠이 내려앉은 밤.
하나둘 역대급으로 모여든 사람들이 불꽃의 춤을 보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
불꽃은 찰나에 피었다 사라졌지만, 그 속에는 수백 년을 살아온 사람들의 애환과 희생, 그리고 침묵과 의지가 담겨 있는 듯했다.
기록에 따르면 낙화놀이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즐겼던 풍류의 하나라고 한다. 그러나 그 불꽃이 주는 느낌은, 귀족의 풍류가 아닌 서민의 한숨이었다.
그 안에 혼을 실어 만든 불빛은 마치 계급 사회의 하층민들이 흘린 눈물이 하늘로 피어오른 듯 했다.
🌟 질서의 아름다움, 희생의 숭고함
타닥 타닥 불꽃을 띄기며
낙화봉의 불빛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시작해 하나의 궤적을 만들며 떨어진다.
그 모습은 마치 하나의 별이 되기 위한 작은 빛들의 연대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는 그 빛을 따라 사랑을 속삭였고, 누군가는 묵묵히 그 찰나의 화려함 속에 삶의 무게를 내려놓았다.
동서남북 서로 다른 위치에서 출발했지만,
낙화봉은 불빛을 내며 질서 있게 한 줄기로 모였다.
그 찰나의 질서는 어느 국가행사보다 아름답고 위대해 보였다.
불꽃은 결국 자신을 태워야 가장 화려한 빛을 낸다.
그 찬란한 순간, 사람들의 눈빛은 슬프면서도 기뻤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여기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말이다.
마치 칠흑 같은 어둠에서 반딧불 하나가 깜박이며 사람의 마음을 위로 하듯이.
그것이 바로 무주 낙화놀이 축제가 가진 진짜 힘이었다.
해질 무렵의 하늘은 마치 불꽃을 예고하듯 물들었고,
그 붉은 구름 사이로 기억이 피어오르는 듯한 감정이 일었다.
낙화놀이는 단순한 불꽃놀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삶에 대한 존중, 공동체의 연대, 그리고 자유에 대한 깊은 감사의 형식이었다.
💞 사랑도 이처럼 치열하게
낙화봉의 불빛이 점점이 모여 흐르다가
마침내 한 줄기가 되어 떨어지는 순간,
나는 마치 오작교의 견우와 직녀의 해후를 본 듯한 감정이 밀려왔다.
“이보다 더 뜨겁고 치열한 사랑이 어디 있으랴.”
낙화봉이 마지막으로 내는 불꽃은 연인의 입맞춤 같았고,
그 빛 속에서 우리의 사랑도, 삶도, 자유도 익어가고 있었다.
🕊️ 자유와 헌신, 그리고 오늘
누군가가 불꽃을 피우기 위해 땀을 흘렸고,
누군가는 스스로를 태워 주위를 밝혔고,
우리는 그 야광봉 빛 덕분에 자유를 누리고 살아간다.
낙화놀이는 단지 야경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도 대한민국이 나아가는 방식이고,
서로를 비추며 함께 타오르는 우리의 삶의 방식이다.
혹독한 지난 겨울의 키세스군단처럼......
📸 사진 속에서
- 어두운 마을을 밝히는 석양의 붉은 띠.
- 검은 밤을 뚫고 하늘로 솟구치는 불꽃의 물결.
- 그리고 그 곁을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정숙한 표정.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이 축제는 단지 불꽃놀이가 아니구나. 이것은 우리 모두의 힘이고 이야기구나.”
✨ 마무리하며
찬란한 불꽃이 사라지고, 밤하늘에는 다시 어둠이 내려왔다.
그러나 마음속엔 여전히 낙화봉이 그은 궤적이 남아 있어 삶을 정리하고, 기억을 조용히 되새기게 했다.
무주의 깊은 산골 마을, 두문리.
그곳에서 나는 찰나의 빛 속에 담긴 역사와 희생, 사랑과 자유를 마주했다.
낙화봉은 사라졌지만, 그 빛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 한구석에서 타오르고 있다는 것을.
언제까지나......